영국은 2024년 10월부터 사용자에게 성희롱 예방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EHRC(Equality and Human Rights Commission, 평등인권위원회)가 제시하는 8단계 실무 가이드와 여기서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정리하였습니다.
참고: EHRC, 「Employer 8-step guide: Preventing sexual harassment at work」, 「EHRC, Sexual harassment and harassment at work: technical guidance」
1. 법적 근거
영국의 성희롱 예방 의무는 Equality Act 2010을 개정한 Worker Protection (Amendment of Equality Act 2010) Act 2023에 근거합니다. 여기서는 사용자에게 성희롱을 예방하기 위해 “합리적인 조치(reasonable steps)”를 취할 법적 의무가 부과되었습니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EHRC의 집행 조치 대상이 될 수 있고, 실제 성희롱 사건이 인정될 경우 노동심판소가 배상액을 가중할 수 있습니다.
2. EHRC 8단계 실무 가이드
EHRC가 제시하는 실무 가이드는 8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① 실효적인 반(反)괴롭힘(harassment) 정책 수립
성희롱 정책은 다른 유형의 괴롭힘 정책과 통합할 수도, 별도로 둘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다음 내용은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 정책의 보호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히 특정
- 성희롱은 위법이며 용인되지 않는다는 선언
- 사용자가 성희롱 예방을 위한 합리적 조치를 취할 법적 의무를 진다는 점
- 괴롭힘이나 보복(victimisation) 시 해고를 포함한 징계 처분이 가능하다는 점
-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행한 경우처럼 가중 요소가 징계 수위 결정에 반영된다는 점
- 성희롱의 정의와 사업장 실정에 맞는 구체적 예시
- 신고 접수 및 대응 절차
- 제3자(고객·이용자 등)에 의한 괴롭힘에 대한 대응 방침
제3자 괴롭힘 조항에는 특히 ⓐ 제3자에 의한 성희롱도 예방 의무 대상이라는 점, ⓑ 제3자 괴롭힘만으로는 근로자 개인이 단독으로 소를 제기할 수 없지만 다른 유형의 청구에서 법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 용인하지 않는다는 방침, ⓓ 신고를 장려한다는 점, ⓔ 예방을 위한 구체적 조치, ⓕ 재발 방지 조치까지 명확히 담아야 합니다. 정책은 정기적으로 재검토·갱신하고, 해외 사업장이 있다면 현지법을 고려해 전체 사업 영역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② 직원 참여 유도
정기적인 1:1 면담, 직원 설문조사, 퇴사 인터뷰, 오픈도어 정책 등을 통해 잠재적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현재 조치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모든 근로자가 신고 방법, 정책 내용, 위반 시 결과를 알고 있도록 해야 합니다.
③ 위험성 평가 및 감소 조치
위험성 평가는 예방 의무 이행의 핵심입니다.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위험 요인을 점검합니다(아래 “3. 위험성 평가, 더 깊이 보면” 참조).
- 권력 불균형이 존재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 조직 내 다양성이 부족한 부분이 있는가
- 특정 집단·직무의 고용 불안정성이 있는가
- 야간 근무나 단독 근무를 하는 직원이 있는가
-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업무가 있는가
- 고객이나 직원이 음주하는 상황이 있는가
- 외부 행사·컨퍼런스·교육 참석이 요구되는가
- 업무 외 시간에 직원들이 함께 어울리는가
- 저속하거나 무례한 언동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있는가
④ 신고 체계 구축
익명 또는 실명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신고 시스템(온라인 또는 독립적인 전화 상담 등)을 마련해야 합니다. 무엇이 용인되는 행동인지, 성희롱을 어떻게 알아챌 수 있는지, 겪거나 목격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든 근로자에게 명확히 안내해야 합니다. 공식·비공식 제기 사항을 모두 중앙화해 기밀로 기록·관리하면 추세 파악에도 도움이 됩니다.
⑤ 교육
관리자와 고위직을 포함한 전 직원이 성희롱이 무엇인지, 겪거나 목격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신고가 들어왔을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교육받아야 합니다.
제3자에 의한 괴롭힘 위험이 높은 업종이라면 이에 대한 대응 교육도 별도로 필요합니다. 교육의 실효성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재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⑥ 신고 접수 시 대응
신고인이 원하는 해결 방식을 고려하며 즉시 대응해야 합니다. 모든 당사자의 비밀을 존중하고, 조사·처리 과정에서 신고인이 추가 괴롭힘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야 합니다(예: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다른 팀·사업장으로 배치하는 것이 좋음). 목격자 역시 보호 대상입니다.
신고 내용이 형사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면, 경찰 신고 여부를 본인과 상의하고 신고를 원할 경우 지원해야 합니다. 비밀유지 합의(NDA 등)는 합법적이고 필요하고 적절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하며, 결과와 이의제기 절차는 신고인에게 신속하게 통지해야 합니다.
⑦ 제3자에 의한 괴롭힘 대응
고객·거래처·환자·공급업체 등 제3자에 의한 괴롭힘도 동료에 의한 괴롭힘과 동일한 무게로 다뤄야 합니다. 신고 체계를 마련하고, 직원이 고객과 단둘이 남게 되는 고위험 업무 환경을 별도로 점검해야 합니다.
✍️ 한국의 경우,
제3자는 남녀고용평등법의 각 조항이 적용되는 성희롱 행위자는 아닙니다. 다만, 「남녀고용평등법」은 고객 등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근로자에게 성희롱하고 해당 근로자가 그로 인한 고충해소를 요청할 경우 사업주는 근무 장소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의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고, 피해근로자에게 불이익한 조치를 취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의2).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사업주로 하여금 고객응대근로자에 대하여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도록 하고 있고, 건강장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현저한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업무의 일시적 중단 또는 전환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⑧ 조치의 모니터링과 평가
예방 조치의 실효성을 정기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평가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필요한 변경 사항을 실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공식·비공식 신고 데이터의 추세 분석
- 익명 설문(경험 또는 목격 여부, 향후 신고 의향과 그 이유, 추가로 필요한 조치에 대한 의견)
- 신고 데이터와 설문 결과의 교차 검증,
- 사건 종결 후 교훈 도출 세션
정책·절차·교육 내용은 정기 검토가 필요하며, 직원대표나 노조 등의 의견을 반영해 필요한 변경을 실행해야 합니다.
3. 위험성 평가, 더 깊이 보면
앞의 ③단계는 8단계 중에서도 특히 핵심적인 부분이라 따로 떼어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EHRC는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지 않으면 예방 의무 자체를 준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무엇을 점검하는지
위험성 평가 시 고려 대상이 되는 요인
- 권력 불균형 고용 불안정성 (예: 제로아워 계약, 파견근로자, 도급인력의 활용)
- 단독 근무 및 야간 근무
- 근무시간 외 근무 음주가 이루어지는 상황
- 고객 응대 업무
- 지역적·전국적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특정 사건·시기
- 인력 구성의 다양성 부족(특히 고위직에서)
- 파견근무(secondment) 배치
- 여러 근무지로의 이동
- 재택근무
- 평소 근무 환경을 벗어난 행사 참석 (예: 교육, 컨퍼런스, 업무 관련 사교 행사)
- 업무 외 사적 모임
- 근로자 간 SNS 접촉
- 인력 구성의 특성 (예: 남성 편중 인력 구성일 경우 성희롱 위험이 더 높을 수 있음)
성희롱 위험을 높일 수 있는 특정 요인(아래에 한정되지 않음)
- 남성 편중 인력 구성
- 저속하거나 성차별적인 ‘농담(banter)’ 또는 그 밖의 무례한 언동을 용인하는 조직문화
- 성별에 따른 권력 불균형 (예: 하급직 대부분이 여성이고 고위 관리자·리더 대부분이 남성인 경우)
- 음주를 허용하는 근무 환경
- 근로자에게 사업장 외부의 사교 행사·컨퍼런스 참석이나 외박을 기대하는 분위기 (특히 음주가 동반되는 경우)
- 단독 또는 고립된 근무
- 제3자와의 단독 근무
- 야간 근무
- 불안정·임시 고용 인력
- 과거 성희롱 신고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이력
- 성희롱 예방·대응을 위한 정책·절차의 부재
- 두 가지 이상의 보호특성을 가진 근로자 (예: 장애인, 소수인종, LGBT 커뮤니티 구성원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성희롱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음)
- 특정 직무나 특정 근로자에게만 해당하는 위험 — 이 역시 반드시 고려·대응되어야 함
5.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부분
위의 내용은 비단 직장 내 성희롱 뿐만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에도 함께 적용할 수 있어 보이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① 보복(불이익 처우) 방지 조항의 구체화 — 특히 ‘목격자·조력자’ 공백
한국의 불이익 처우 금지 규정을 정확히 뜯어보면, 보호 대상이 생각보다 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근로기준법과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성희롱 조치과정에서 신고한 근로자 또는 피해근로자 등(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에 대해 불리한 처우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제6항 및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6항).
목격자·협력자가 신고자가 아니라면 불리처우 금지규정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고, 이 금지의무의 수규자는 사용자(사업주)이므로 동료가 보복하는 경우에는 각 해당 조항에 따른 형사처벌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부 규정으로 목격자·조사협조자·조력자까지 정책상 보호 대상으로 명시하는 방향을 고려해 볼 수 있겠습니다.
② 위험성 평가의 ‘간이화’ — 고위험 조직 파악과 조직문화 서베이
한국에는 성희롱·괴롭힘에 대한 위험성 평가 법정 의무가 없습니다만, 영국식 위험성 평가를 간이 형태로 도입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 조직의 고위험 요인 자가 점검(예: 남성 편중 구조, 회식·음주 문화, 야간·단독 근무, 고객 응대 직군, 위계적 분위기 등) 해보고, 정기적인 조직문화 설문(climate survey) 실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겠습니다.
③ 사건 종결 후 재발방지 점검(lessons-learned) 절차 마련
개별 사건을 처리하고 끝내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이 종결된 뒤 재발 방지 관점에서 제도·문화를 되짚어보는 절차를 두는 것입니다. 유사 사건이 반복될 소지가 있는 구조적 원인은 없었는지, 신고·조사 절차에서 개선할 점은 없었는지를 점검해 정책에 환류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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